인공지능(AI) 고점 논란에 글로벌 증시 불안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은퇴를 앞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마지막 베팅은 거대 기술기업(빅테크) 알파벳(구글)으로 드러났다. AI 관련주에 대해선 ‘큰손’들의 투자 판단이 엇갈려 시장 방향성이 모호한 가운데 이번주 발표될 엔비디아 실적이 연말 증시 향방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1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13F(1억달러 이상 운용사 보유 지분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버핏 회장의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 3분기에 구글(GOOGL) 주식 1784만6142주를 신규 매입했다. 3분기 말 주가 기준 평가금액 43억달러(약 6조3000억원)에 달하는 양이다. 이번 매수로 구글이 버크셔해서웨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위(1.6%)로 올라섰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빅테크 주식을 신규 매입한 것은 2019년 아마존을 사들인 이후 처음이다. 버크셔해서웨이는 구글 매입 등을 위해 기존 애플 보유량 중 5분의 1(106억달러어치)을 팔아 치우며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재편(리밸런싱)에 나섰다.
‘10년을 투자하지 않을 주식이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버핏 회장이 구글 주식을 매입한 것은 AI 거품 논란에도 실적이 좋은 기술주는 투자 매력도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버핏 회장의 매수 소식이 들려온 이후 구글 주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시간 외 거래에서 4% 상승했다.
버핏 회장은 2017년 구글 주식을 매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이미 10배가 오른 주식은 매수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발언 이후로도 구글은 약 8년간 481% 추가 상승했다.
헤지펀드 운용 시절 연평균 30% 수익률을 올렸던 스탠리 드러켄밀러 듀케인패밀리오피스 회장은 선별적인 빅테크 투자에 나섰다. 그는 아마존(약 43만주)과 메타(약 7만주)는 매수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 보유했던 20만주를 전량 매도했다. 드러켄밀러 회장은 지난 3분기에 기술주보다는 헬스케어주(나테라, 인스메드, 테바) 매집에 집중하며 AI 거품론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밖에 AI에 공격적인 투자를 했던 월가의 주요 헤지펀드가 올해 3분기에 엔비디아, 아마존, 알파벳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리는 빅테크 노출도를 줄였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는 엔비디아 지분을 3분의 2가량, 알파벳 지분을 절반 이상 대폭 삭감했다. 타이거 글로벌과 론파인캐피털은 메타 지분을 각각 62.6%, 34.8%씩 줄였다.
AI 투자를 늘리는 빅테크 기업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우려하는 은행과 투자자들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헤지 수단을 찾아 나섰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기술 기업들의 부채 증가에 따라 개별 기업의 디폴트 시 보상을 제공하는 신용디폴트스왑(CDS) 등 파생상품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오라클의 CDS 거래량은 지난 7일 기준 6주 동안 42억달러(약 6조1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억달러) 대비 무려 21배 급증했다. 최근 300억달러(약 33조7000억원) 상당의 대규모 채권을 발행한 메타 관련 CDS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편 오는 19일(현지시간) 예정된 엔비디아의 올해 3분기 실적 발표가 연말까지 기술주 투자심리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의 성장률 둔화 폭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엔비디아는 최근 6개 분기에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지만 성장률은 점차 낮아졌다.
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재무책임자(CIO)는 “엔비디아 성장률은 100%에서 50%로 둔화됐는데 향후 12~18개월 동안 30%나 20%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성장률이 20%대로 향하게 된다면 현재의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을 소화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가 지난 8월에 제시한 올해 3분기 매출 전망치는 540억달러(약 78조원)다. 가이던스에 부합한다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약 54% 성장한다.
‘빅쇼트’ 마이클 버리 사이언자산운용 대표가 AI 거품론에 베팅하며 엔비디아 풋옵션을 매수한 것을 두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버리 대표의 행보로 엔비디아·팰런티어 주가가 하락하자 알렉스 카프 팰런티어 CEO는 “엔비디아와 팰런티어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며 그를 비판한 바 있다. 최근 사이언자산운용은 펀드 청산을 발표했다.